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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패권전쟁 틈바구니에 낀 한국 - 이병태

• 글쓴이: 컨슈머워치  
• 작성일: 2021.04.21  
• 조회: 800

자유무역 국제질서는 우리를 부국으로 만든 기반이다. 미국과 자유무역 진영이 구축한 이 체제는 새로이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위협으로 흔들리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힘을 근원적으로 약화시키기 위해 중국과 기술패권 경쟁에 돌입했고, 그 불똥은 반도체 등 첨단 산업으로 튀고 있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 비중은 19.3%로 압도적이다. 스마트폰과 자동차, IT 기기 등 많은 산업의 경쟁력 원천이자 4차 산업혁명을 견인할 성장 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반도체는 가히 한국의 먹거리 산업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제조업 일자리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반도체는 13만명의 고용을 창출했고, 올해 들어서도 고용 증가세는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 부족으로 자동차 생산이 멈추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웨이퍼를 흔들어 보이며 "반도체는 인프라"라고 강조한 것에서 알 수 있듯 반도체는 경제와 안보를 지탱하는 기간산업이다. 이 때문에 강대국들은 반도체 자국 우선주의를 들고나오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기업들에 자국 내 투자를 압박하고 있고 반도체 육성법안을 만들어 40조원의 예산으로 기업들을 지원하고 나섰다. 위기를 느낀 중국은 5년 내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며 칼을 가는 각오로 반도체 굴기를 밀어붙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반도체 수출 점유율을 10년 내 배로 높이겠다는 `디지털 전환 로드 맵`을 추진하고 있다. 대만의 TSMC는 파운드리 시장 50% 이상을 점유하며 독점적 지위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문제는 미·중 갈등에서 어느 쪽의 편을 함부로 들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미·중 갈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어떤 결과를 맞게 되는지를 참담하게 경험했다. 사드 배치를 위해 골프장을 내어준 롯데가 중국에서 퇴출되고 이는 롯데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중국의 보복을 수수방관해 왔다. 반도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피해 규모를 상상하기 힘들다.


정부는 반도체 산업의 위기를 헤쳐 나갈 대책과 능력이 있는가? 청와대에서 사진을 찍는 행사로 될 일이 아니다. 롯데의 비극이 재연되지 않기 위해 미·중 외교에 비상한 각오로 나서야 하고,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들을 구체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한 대학 정원 규제 혁파 등이 절실하다. 반도체는 인건비와 물류비 비중이 낮아 정치적 압력이 아니라면 해외에 공장을 지어야 할 이유가 적다. 대처에 따라 좋은 일자리를 지킬 수 있는 산업이다.


강대국들이 국가의 운명을 걸고 정부와 기업이 하나 되어 반도체 굴기를 추구하는 지금 한국 상황이 더 위험해 보이는 이유는 정부나 기업의 대처능력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사드 대처나 백신 확보 실패에서 보듯 정부의 국제 협상력 부재는 반복적으로 노출되어 왔다.


한국 반도체가 이병철 회장의 결단에서 시작되었고, SK하이닉스를 최태원 회장의 결단으로 인수했듯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결단은 대주주의 몫이라는 점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런데 반도체 선두 주자 삼성이 정치적 이유로 총수 부재와 컨트롤타워 실종 상태에 처해 있고, 정부는 기업을 옥죄는 규제 법안만 누적해 왔다. 훗날 반도체 산업을 잃고 어리석음을 후회할 날이 올까 두려운 이유다.



이병태 (KAIST 교수 / 컨슈머워치 공동대표)



매일경제 2021-04-21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21/04/38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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