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외면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선해야 - 곽은경
파리의 미쇼디에르 가와 뇌브생 토귀스탱 가가 만나는 곳에 대형 유통업체 하나가 문을 열었다. 소비자들은 전에 없던 싼 가격, 다양한 제품, 정찰제, 반품서비스, 편의시설에 열광하며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이 업체가 사업영역을 하나씩 확장할 때마다 주변 중소상점은 하나둘씩 문을 닫게 된다. 옷감을 파는 ‘전통 엘뵈프’의 주인 무슈 보뒤와 수제우산 가게의 부라 영감은 대형 유통업체의 마켓팅 방식을 두고 상도덕에 어긋나는 행위라며, 맹렬히 비난했다. 이들은 새로운 경쟁자에 맞춰 전통의 자부심을 지키겠다고 버텼지만, 손님의 발길이 끊기자 폐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진정한 상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 ‘많이 파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비싸게 파는가’라고 주장했던 파리의 중소상인들은 결국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고, 새로 문을 연 대형 유통업체는 그해 최고의 매출액을 달성한다.
1850년대 문을 연 세계 최초의 백화점 봉 마르셰를 모티브로 하는 에밀 졸라의 소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대형 유통업체와 소상공인의 갈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 백화점이 등장한 170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안타깝게도 1850년대에도, 21세기에도 소비자들은 대형 유통업체를 선택하고 있다. 골목상권이 자신들의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고, 동일한 이유로 소비자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은 큰 문제다.
정치권에서는 대형유통업체가 문제인 것처럼 강도 높은 규제를 쏟아내고 있다. 2010년 등장한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의 주말영업을 금지하고, 전통시장 근처에 대형마트를 입점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일몰제로 5년 후 폐지할 예정이었으나, 연장을 거듭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21대 국회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대형마트와 SSM 외에 추가로 백화점과 면세점, 복합쇼핑몰까지 규제의 대상으로 포함하는 법안을 마련 중에 있다. 또한 대형마트가 아예 입점을 하지 못하도록 입점 허가제를 등록제로 바꾸는가 하면, 전통상업보존구역 범위를 현행 1km에서 20km로 확대하는 법안도 준비 중이다. 아무리 뒤져봐도 유통산업의 최종 결정자인 소비자들에 대한 고려는 없다.
더 큰 문제는 유통규제들이 시장에서 성과는커녕 부작용만 내고 있다는데 있다. 소비자들의 마음껏 쇼핑할 자유를 빼앗은 것은 물론, 강제휴무로 대형유통업체를 중심으로 일자리가 줄고, 마트에 입점해있는 상인들, 납품하는 중소제조업체들, 농민들까지 어려움을 겪는 등 2차 피해도 심각하다.
특히 규제로 보호하려고 했던 소상공인들의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소식은 모두를 허탈하게 한다. 유통산업발전법은 누구도 구할 수 없었으며, 온 국민를 피해자로 만들었다.
실패의 이유는 단순하다. 유통산업발전법이 소비자의 행위를 제한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대형마트에서 얻는 만족감을 전통시장에서는 경험할 수 없기에, 마트 휴무일을 고려해 평일에 장을 보거나, 온라인으로 쇼핑을 한다. 규제를 받지 않는 식자재마트를 이용하기도 한다. 마트가 문을 닫는다고 전통시장을 방문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유통산업발전법이 이름에 걸맞게 유통산업을 발전시키려면 중소상인들의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스스로 발전하지 못하고 정치적 힘에 의존하는 방법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소비자들이 대형마트를 선택하는 그 이유를 전통시장에서도 찾을 수 있도록 개선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정부와 국회는 소비자들의 발목을 잡는 규제 대신 소상공인들이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고,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아마존에서 한국 호미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뉴스는 큰 의미를 갖는다. 온라인 쇼핑이 대세라면, 소상공인들도 영주대장간의 호미처럼 온라인 판매도 시도하고, 코로나로 비대면 서비스가 확산되면 배달서비스도 고려하는 등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 LA의 파머스 마켓이 그로브몰 옆에서 함께 성장했듯이 대형마트를 경쟁상대로 볼 것이 아니라 상생의 대상으로 접근하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끝으로,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면, 그 법을 만든 국회의원, 정치인들부터 솔선수범할 것을 제안한다. 국회의원들이 세비 10%를 전통시장상품권으로 지급 받아서, 국회의원과 그의 가족들이 앞장서서 전통시장을 이용하는 것이 법의 취지를 살리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곽은경 (자유기업원 기업문화실장 / 컨슈머워치 사무총장)
브릿지경제 202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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