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 인하, 바람직한 정책 방향은? [일본사례 알아보기]
정부가 통신비 인하를 위해 다방면으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해 통신비 부담 완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5G 중간요금제의 데이터 제공 확대, 시니어 요금제 출시 등이 논의되었다.
윤 대통령은 “금융, 통신은 민간분야가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으나 서비스의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정부 특허에 의해 과점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라고 지적했으며, 선택권 확대와 시장 경쟁 촉진 강화를 지시했다. 이에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요금을 다양화해 부담을 줄이고 요금 선택권을 확대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동통신 3사는 이용자들에게 3월 한 달간 무상으로 추가 데이터를 제공하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쓰는 이용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혜택이 아닌 데다가 100GB 등 고가의 요금제에 가입된 이용자들은 이미 충분한 데이터 제공량이 있어 30GB를 추가로 지원받더라도 쓸모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게다가 3월 안에 제공 데이터를 사용하지 않으면 다음 달로 이월되지 않고 혜택이 소멸하게 된다.
이에 데이터를 일정 기간 조금씩 추가로 지원하거나, 통신비를 인하해주는 것이 더 실효성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제4 이동통신사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이통사 간의 경쟁을 촉발해 가계통신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방안이다. 지난해 12월 KT와 LG유플러스에 할당 취소된 5G 28GHz 주파수 대역에 제4 이통사가 진입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28GHz에 제4 이동통신사가 손쉽게 진입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
5G의 주파수는 중저대역인 6GHz 이하의 주파수 FR1과 밀리미터파 주파수인 24GHz 이상의 FR2 두 종류로 나뉜다. 28GHz 밀리미터파 주파수는 3.5GHz의 중저대역 보다 대역폭이 넓고 속도도 빠르지만 전파 도달거리가 짧고 벽과 건물을 통과하는 투과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같은 면적에 통신망을 구축하려면 3.5GHz에 비해 더 많은 기지국과 장비의 설치가 필요하다. 제4 이동통신사 유치가 성공하려면 막대한 자본력과 인프라 투자가 필요한 것이다. 이 때문에 28GHz 주파수의 5G 기술은 전국적인 B2C 서비스보다는 B2B 서비스에 특화되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의 제4통신사 ‘라쿠텐 모바일’의 사례가 대표적인 제4 이통사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일본의 전국 이동통신 시장은 도코모, AU, 소프트뱅크 3개사가 점유하고 있었지만, 알뜰폰 서비스로 경험을 쌓은 라쿠텐이 2020년 4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다. 라쿠텐 모바일은 처음에는 대도시 위주로 망을 구축하며 나머지 지역은 타 통신사의 망을 빌려 썼지만, 점차 서비스 영역을 넓혀나가 지난해 6월에는 서비스 2년 8개월 만에 자사 LTE 회선으로 일본 인구 97.6% 커버율을 달성했다.
제4 이통사로 안착한 라쿠텐 모바일은 현재 3GB 이하 9500원, 3~20GB 1만 9천 원, 무제한 2만 9천 원 등 저렴한 5G 요금제를 통해 가입자를 확대하며 일본의 가계통신비 절감에 일조하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제4 이통사 유치 성공을 위해 2분기 주파수 할당 공고에 앞서 기업들을 상대로 사업 설명회를 진행하는 등 민간 기업 유치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또 이용자 밀집 지역에 자사의 통신망을 구축하는 대신 다른 지역에서는 타 이통사의 망을 빌려쓰는 방식의 하이브리드형 사업을 허용하는 등 제4 이통사 안착을 위한 유인책을 내놓고 있다. 이전에 여러 차례 실패한 제4 이통사 유치가 이번 정부에서는 성공할 수 있을지 시선이 쏠린다.
공정위는 이동통신사의 단말기 유통시장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휴대전화 단말기 유통시장을 점검하고 이동통신 3사의 경쟁을 촉진해 독과점 구조를 개선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이동통신 3사가 5G의 속도를 LTE보다 20배 빠르다고 광고해온 행위에 대해 허위, 과장광고 여부도 살펴볼 예정이다.
공정위는 지난달 26일 대통령 업무보고 과정에서 경쟁 활성화를 위한 규제 개선의 일환으로 대리점, 판매점 추가지원금의 상한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하기도 했다. 추가지원금 상향은 방통위가 2021년부터 추진해온 방안이다. 유통망 추가지원금의 법적 한도를 15%에서 30%로 상향해 경쟁을 활성화하고 이용자의 단말기 구입 부담을 경감하겠다는 방안이다. 하지만 국회에 제출된 해당 법안은 현재 과방위 법안소위에 머물러 있는 상태이다. 멈춰있던 추가지원금 상향 논의에 다시 불이 붙을지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통신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의 개선 혹은 폐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2014년 10월부터 전면적으로 시행된 단통법은 요금제와 연계된 휴대전화 보조금의 차등 지급을 금지해 휴대전화 판매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시행된 법안이다. 단통법으로 인해 소비자들 간의 보조금 차별은 사라졌지만, 3사가 동일한 보조금을 지급하게 되면서 경쟁 역시 사라져 독과점 체계가 굳어졌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여전히 남아있는 불법 보조금으로 인해 단통법의 취지가 무색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작년 11월 과방위에서 나온 보고서에 따르면 단통법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방송 통신시장 조사분석’ 사업에 매년 20억 원 이상이 투입되고 있어 불필요한 재원이 소모되고 있다. 또 보고서는 “정부가 단통법 시행 이후 대규모 모니터링 사업 예산을 지출하는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소비자 모두가 평등하게 비싸게 구매하는 방식을 유도했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소비자단체 컨슈머워치는 작년 4월에 규제개혁신문고를 통해 단통법 폐지를 건의했다. 컨슈머워치는 “단통법은 사실상 정부가 단일 가격제로 고정시키는 시장 개입이며 간접적으로 가격담합을 유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소비자를 위한 경쟁강화 효과를 위해 단말기 유통법 제3~제6조의 폐지를 제안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이 더 싼 가격에 질 좋은 상품을 공급하기 위해 경쟁할 것이며, 소비자 후생에 긍정적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담당 부처의 답변은 부정적이었다. 해당 건의에 대해 방통위는 “단말기유통법은 휴대폰 시장의 왜곡된 거래관행을 바로잡아 가격 정보의 투명성을 확대하고, 소비자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단말기유통법 제3조부터 제5조를 폐지하는 경우 과거 아이폰 대란 등과 같은 과도한 이용자 차별과 시장혼란이 다시 극심해질 우려가 있다.”라고 답변했다. 과기정통부 역시 단통법 폐지로 소비자 혜택이 사라지고, 과도한 이통사 간 경쟁으로 이용자 차별이 심화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참여연대는 단통법을 개정해 분리공시제를 시행하고 선택약정 혜택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가 작년 9월 제안한 ‘2022 정기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입법, 정책과제’에 따르면, 정부가 고물가 대책으로 5G 중간요금제를 도입했지만, 여전히 높은 가격에 저가요금제 이용자에 대한 차별 문제를 시정하지 않았고 선택지도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통신비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단말기 가격 부담을 낮추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가계통신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단통법을 개정해 휴대전화 단말기 판매시 전체 보조금을 구성하는 이동통신사 지원금과 제조사 장려금을 따로 공시하는 분리공시제를 시행하고, 소비자들의 선택약정 혜택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 김주호 민생희망본부 팀장은 20일 <이코리아>와의 통화에서 "단통법이 처음 도입되는 과정에서 조금 미비한 부분이 있어 단말기 거품을 꺼뜨리는 효과도 없었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체감상 비용이 올라간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에서는 단통법의 폐지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게 되는 결과를 낳아 단말기 시장을 더욱 혼탁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 단통법을 유지하되 처음 제정된 취지에 맞게 분리 공시제를 꼭 도입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코리아 202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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