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중기적합업종 11년, 무용론과 옹호론 그 어디쯤
# 가정➊ 생태계교란 생물 = “등딱지 길이 20~40㎝, 꼬리 길이 28㎝, 무게 4.5~16㎏. 물가 생물 중 악어 다음의 포식자.” 이 생물은 잔인하다. 무언가 입에 들어오면 날카로운 턱으로 먹어치운다. 사람 손가락도 예외가 아니다. 이 최상위 포식자는 지난 7월 환경부가 ‘생태계교란 생물’로 지정한 ‘늑대거북’이다.[※참고: ‘생태계교란 생물’이란 생태계 균형을 교란하거나 교란할 우려가 커서 개체 수 조절이 필요한 생물을 말한다.]
이렇게 포식자를 관리하거나 통제하는 건 중요하다. 늑대거북처럼 잔인한 생물을 그대로 두면, ‘약자’가 사라져 생태계가 붕괴할 수밖에 없어서다. 다소 행정적인 단어로 만들어진 ‘중소기업적합업종(이하 중기적합업종)’은 이같은 생태계의 법칙을 반영한 제도다. 생태계로 따지면 최상위 포식자인 대기업이 시장에 진입해 중소기업을 무너뜨리는 걸 막겠다는 게 이 제도의 취지다.
중기적합업종은 반성의 산물이다. 2006년 ‘중소기업고유업종’ 제도를 폐지하자 대기업들이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이를 통제하기 위해 2011년 ‘중기적합업종’으로 재탄생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하면 3년(연장 시 최대 6년)간 대기업의 사업 확장·시장 진입이 제한된다. 다만 권고사항으로 법적 강제력은 없다.
그렇다면 이 제도의 성과는 어떨까. 앞서 언급했던 가정➊을 뒤집어 보면 누구나 쉽게 중기적합업종의 ‘허와 실’을 따져볼 수 있다. 그럼 또 다른 가정을 해보자.
# 가정➋ 방아쇠 효과와 천적 = 천적의 역할은 이중적이다. 자신보다 약한 생물을 잡아먹는 ‘포식자’이지만, 생물의 수를 조절하는 ‘조정자’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천적이 사라지면 대발생大發生(outbreak)이 일어난다. 대발생은 병해충이 많은 면적에 일시에 무더기로 발생한다는 것을 말하는데, 예를 들어보자.
1907~1918년 미국 애리조나주 카이바브 고원(Kaibab National Forest)에서는 ‘사라지는 사슴을 지키자’는 취지의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사슴을 살리기 위해 상위계층의 동물인 퓨마와 늑대를 총으로 쏴서 강제로 포획했던 거다. 하지만 퓨마와 늑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결과는 끔찍했다(방아쇠효과ㆍtrigger effect).
퓨마와 늑대가 사라진 생태계에서 사슴의 개체 수는 무려 25배나 늘어났고, 대지의 풀을 닥치는 대로 뜯어 먹어 고원은 황폐화했다. 결국 ‘사슴을 지키자’는 프로젝트는 사슴의 개체 수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역효과만 낳은 채 막을 내렸다.
이는 생태계에서 천적을 없애는 게 상책이 아니란 걸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를 통해 중기적합업종 제도의 ‘무용론’의 근거를 설명할 수도 있다. 중기적합업종이란 명분으로 대기업을 쫓아내자 중소기업들은 경쟁력을 높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결국 소비자의 후생만 나빠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거다.
이런 사례는 숱하다. 대표적인 게 중고차 시장이다. ‘중고차판매업’은 2013년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돼 2019년까지 6년간 보호를 받았다. 하지만 제도의 보호 안에서 일부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키우기보단 ‘꼼수’를 부리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허위ㆍ미끼 매물’ ‘성능상태 점검 불일치’ ‘과도한 수수료’ 문제 등으로 소비자의 불만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지난해 중고차 시장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중 79.9%는 “중고차 시장이 혼탁·낙후돼 개선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대기업의 시장 진출을 허용해 중고차 시장을 선진화하길 바란다”는 의견을 밝힌 응답자는 56.3%나 됐다.
중기적합업종 제도의 부작용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인데,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3월 이런 의견을 받아들여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허용했다.[※참고: 중고차 매매업계는 중기적합업종 지정 해제 직후 ‘생계형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한 바 있다. 생계형적합업종은 중기적합업종 지정이 만료된 업종 중 선정(중소벤처기업부)해 대기업의 진출을 막아주는 제도다. 중기적합업종과 달리 법적(소상공인 생계형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 규제다.]
이런 사례가 많은 탓인지 중기적합업종 제도를 분석한 기관들도 부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국책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8월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의 경제적 효과와 정책방향’이란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중소기업들의 생산이나 고용 비중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이 제도가 중소기업의 퇴출을 막고 사업을 유지하도록 하는 ‘보호’ 역할은 했지만,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데는 한계를 나타냈다. 산업의 성장을 저해하고, 소비자 후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제도의 점진적인 폐지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단체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지난 9월 15일 소비자단체 컨슈머워치는 ‘소비자 입장에서 본 중소기업 적합업종’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김영훈 경제지식네트워크 사무총장은 “특정 품목을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으로 제한하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운 제도”라면서 “시장을 약화하고, 투자가 줄어 산업의 성장이 정체되며 끝내 소비자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들의 주장처럼 중기적합업종은 폐지하는 게 맞는 걸까. 많은 전문가는 “폐지가 답은 아니다”고 주장한다.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제도를 폐지하는 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꼴이 될 수 있다’는 거다. 사실 이유는 간단하다. 무엇보다 중기적합업종의 대상이 극소수다.
현재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업종은 ‘고소작업대임대업’ ‘자동차단기대여서비스업’ ‘대리운전업’ 등 3개뿐이다. 지난 11년간 108개 업종이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됐다가 해제됐다. 제도를 폐지한다고 해도 거둘 수 있는 효과가 크지 않다는 거다. 또다른 이유는 중기적합업종의 지정을 기다리는 산업의 가치다. 대표적인 건 ‘폐플라스틱 재활용업’이다.
지난해 10월 한국자원순환단체총연맹·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등은 “폐플라스틱 재활용업을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달라”고 신청했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하던 폐플라스틱 재활용업이 ESG경영ㆍ탈탄소 정책 등과 맞물려 ‘돈 되는 사업’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례로 SK지오센트릭ㆍ롯데케미칼ㆍ현대오일뱅크ㆍ화학ㆍ보광 등 대기업이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문제는 기존의 영세업체들이다. 한국자원순환단체총연맹 측은 “폐플라스틱 재활용업은 생활폐기물 중 분리수거된 플라스틱을 수집ㆍ운반ㆍ선별ㆍ재활용하는 업종으로, 1960년대 이후 400만 영세업체들의 터전이었다”면서 “굴지의 대기업이 압도적인 자본력으로 막대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시장을 침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기업들이 영세업체가 영위하고 있는 ‘물질 재활용(기계적 공정)’ 시장을 잠식하기보단 자본 투자가 필요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화학적 재활용(화학적 공정)’ 시장에 진출해 달라”고 요구했다. 해당 사안을 검토하고 있는 동반성장위는 신청 1년이 되는 10월 중에 결과를 내놓을 전망이다.
이처럼 중기적합업종 무용론은 다소 위험한 구석이 있다. 언급했듯 폐플라스틱 재활용업체들은 대부분 영세한 데다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대기업이 자본의 힘으로 밀어붙였다간 숱한 영세업체가 고사 위기에 내몰릴지 모른다. 제도를 폐지하기보단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오세조 연세대(경영학)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경기침체로 중소기업의 경영 환경이 악화한 가운데 제도적 울타리가 사라지면 한계에 직면하는 중소기업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들 기업이 무너지면 사회적 비용은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각자가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생태계에서 포식자의 수는 적절해야 한다. 늑대거북처럼 너무 많아도 늑대나 퓨마처럼 너무 적어도 생태계는 붕괴한다. 이런 맥락에서 중기적합업종을 둘러싼 논의도 ‘중간지점’을 찾아야 한다. 무용론은 거칠고, 옹호론은 논거가 빈약하다.
이정희 중앙대(경제학) 교수도 “지난 10여년간의 성과와 문제점을 분석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면서 “다만 중소기업이 보호막 안에서 안주하지 않도록 중소기업 간 경쟁을 유도하고, 산업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제 11년을 맞은 중기적합업종의 숙제다.
2022.10.10.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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