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수탁위, 대표소송 남발 불보듯…이사회 보신주의만 부추길 것"
지난달 10일 국민연금공단이 주주대표소송의 결정 권한을 기금운용본부에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로 넘기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재계는 큰 혼란에 휩싸였다. 기금 운용에 대한 책임이 없고 정치적 외풍에 노출된 수탁위가 결정 권한을 가질 경우 주주대표소송이 본격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지난해 12월 국내 기업 20여 곳을 대상으로 주주가치 훼손 사실을 묻는 비공개 서한을 발송한 사실이 서울경제 보도로 알려지면서 기업들의 위기감은 극에 달했다.
이를 두고 재계와 경제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돼 시작부터 문제’라고 말한다. 또 주주대표소송이 무분별하게 확산할 경우 기업가치 훼손으로 이어지며 기업은 물론 회사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 연금의 수혜자가 될 국민 전체에 실익이 없는 ‘승자 없는 싸움’으로 끝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주주대표소송이 기업 이사진의 보신주의만 부추겨 기업가정신이 실종되고 경제 활력만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경제는 이번 국민연금의 주주대표소송 강화 움직임의 문제점을 전문가들과 함께 알아봤다.
◇권한만 있고 책임 없어…편향된 구성, 소송 남발 우려=수탁위 위원으로 활동 중인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은 “국민연금법은 수탁위 같은 전문위원회의 역할을 ‘검토’와 ‘심의’로 규정했을 뿐 의결권을 주지 않았다”며 “보건복지부가 이번 개정 지침을 통해 수탁위에 결정권을 부여한다면 지침이 법을 위반한 꼴이 된다”고 주장했다. 실제 국민연금법 103조1항은 ‘전문적으로 검토·심의하기 위해 전문위원회를 둔다’고 규정돼 있다. 법 조항을 충실하게 따른다면 수탁위에는 특정 사안에 대한 결정권이 없는 셈이다.
이처럼 절차적 흠결을 가진 이번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는 수탁위가 결정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 회장은 “자문 기구인 수탁위가 잘못된 결정을 할 경우 책임을 지우기 어렵다”며 “소송 제기에 대한 부담이 한결 가벼운 만큼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수탁위 위원은 임시직이고 약간의 회의 수당만 받기 때문에 실제 책임을 지울 수 없다는 게 법률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실제 소송을 수행할 기금운용본부 역시 소송 결정의 책임을 수탁위에 전가하면 결과적으로 책임을 질 당사자가 남지 않는 구조가 돼버린다. 정 회장은 “(지침 개정안은) 국민연금이 (소송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연구의 결과”라며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라고 비판했다. 수탁위의 또 다른 문제는 편향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부회장은 “수탁위 9명 중 근로자와 지역 가입자 추천 몫은 시민 단체 출신들이 맡기 때문에 표결 시 이들의 의견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며 “위원들이 개인적으로 다르게 판단하더라도 추천 단체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객관적 결정을 내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연금·국민 모두 피해만 볼 수도…“사회적 비용 너무 커”=곽은경 자유기업원 기업문화실장은 “기업은 이윤 추구가 근본 목적인데 주주대표소송 확대로 임원들이 지뢰밭을 피해 다니듯 소송에 안 걸리기 위한 소극적 경영을 펼친다면 기업의 가치가 떨어지고 전체 주주에 피해를 준다”고 주장했다. 또 상장사의 경영자는 비상장사에 비해 같은 죄질이라도 더 무거운 책임을 지는 구조여서 상장 인센티브가 사라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곽 실장은 예측했다.
정 부회장도 “2014년 강원랜드가 강원도 태백시에 150억 원을 기부한 것을 두고 감사원이 잘못이라고 지적하며 찬성표를 던진 이사들에게 책임을 물었다”며 “소송을 두려워한 이사들이 애매하고 확신이 없을 때 일단 반대표를 던지는 등 경영 활동이 굉장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정 회장은 “주주대표소송의 대상이 임원 개인일지라도 시장 참여자들은 기업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 한다”며 “결국 임원의 잘못을 주주와 회사들이 다시 떠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막대한 소송 비용도 결국 국민들이나 주주가 부담할 가능성이 크다. 곽 실장은 “상법 403조에 따라 소를 취하하고 화해할 수 있는데, 피소된 이사들은 시간을 끌지 않고 화해를 시도할 것”이라며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이를 중재하는 법률 시장만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연금 독립성 보장…수익률 제고에 힘써야=곽 실장은 “2055년 적립금 소진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국민연금이 자꾸 다른 데 눈을 돌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주주대표소송이 없어도 문제가 있는 기업은 자본시장에서 주가 하락처럼 투자자들이 외면하는 등 충분히 자정작용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국민연금이 정치 논리로 시장에 개입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일본이나 캐나다·미국·네덜란드 등은 연금 기금 운용 관련 의사 결정 기구의 독립성이 보장됐고 위원장도 기업과 학계 출신 전문가로 구성됐다”며 “반면 우리는 정부의 통제 아래에 있다 보니 시장 효율성을 해치는 주주권 행사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기금 운용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결정 권한을 민간 전문가에게 위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노르웨이 GPFG는 투자운용기관(NBIM)에 기금 운용과 의결권 행사 등을 위임했고 민간 금융 전문가에 최고경영자(CEO)를 맡겼다. 일본 GPIF는 자산 운용과 의결권 행사 등 수탁자 책임 활동을 모두 외부 운용사에 위탁한다. 캐나다 CPPIB도 12명의 민간 금융 전문가로 구성된 이사회에 기금 운용을 맡기고 정부에는 사후 보고만 하도록 했다. 정 부회장도 “이번 대표소송 논란을 계기 삼아 국민연금법을 개정해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서정명 기자 vicsjm@sedaily.com
서울경제 2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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