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 "탁상 규제로 대기업·中企 모두 피해"…`상생협력법`의 역설
상생 해치는 `대·중기 상생법` 법제화 눈앞
대기업 규제만 일방적으로 강화
"중소기업과 거래에 악영향"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유용에 대한 규제를 크게 강화하는 내용의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상생협력법) 개정안이 법제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경제계와 전문가들은 “대기업에 대한 일방적 규제로 인해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이 오히려 저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3일 전체회의에서 상생협력법 개정안,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법(한전공대법) 제정안 등 40여 건의 법안을 상정해 논의했다. 상생협력법 개정안은 중소기업 기술 유용 의혹이 불거진 대기업에 무죄 입증 책임을 지우고, 기술 탈취로 인한 손해액의 최대 세 배를 배상하도록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법안이 처리되면 대기업은 기술 유용 분쟁 우려가 큰 국내 중소기업 대신 해외 업체와의 거래를 확대할 것”이라며 “국내 중소기업이 오히려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고 반발했다.
법사위는 한국토지주택공사법·공공주택특별법·공직자윤리법 개정안 등 ‘LH 3법’도 심의했다.
무늬만 진흥법·발전법…일자리 줄이고 대기업·中企 모두 피해
`발전법` 14건·`진흥법` 20건 등 규제 신설·강화하는 내용 담아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상생협력법) 개정안이 대기업 규제를 강화해 ‘상생 협력 촉진’이라는 법안의 본래 취지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가 ‘진흥법’, ‘발전법’, ‘기본법’이라는 이름 아래 현실과는 동떨어진 ‘탁상 규제’를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죽이는 ‘상생협력법’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논의된 상생협력법은 “대기업은 물론 국내 중소기업에 막대한 피해를 줄 법안”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법안은 기술유용 의혹이 불거진 대기업에 입증책임을 부여하고, 기술 탈취로 인한 손해액의 최대 3배를 보상하도록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분쟁 우려로 인해 기존에 거래하던 기업하고만 거래하거나 심한 경우 해외로 거래처를 변경할 가능성이 있다”며 “신규 기업의 거래가 크게 위축되고 국내 중소기업이 법 개정으로 피해를 볼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문위원 역시 법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수탁기업에 대한 각종 보호장치가 오히려 과도한 규제로 작용해 거래를 위축시킬 우려가 없는지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발전법’, ‘진흥법’ 속 규제 본능
국회가 추진하는 각종 ‘발전법’과 ‘진흥법’, ‘기본법’ 등이 오히려 규제를 양산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규제정보포털 등에 따르면 21대 국회가 발의한 각종 ‘발전법’ 중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이 14건에 달했다. ‘진흥법’은 20건, ‘기본법’은 51건이 규제 내용을 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중점 추진법안으로 지정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법안은 복합쇼핑몰에도 월 2회 의무휴업을 강제하는 등 영업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단체마저 법안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소비자단체인 컨슈머워치는 지난해 10월 “유통산업발전법은 소비자들의 쇼핑할 자유를 빼앗는 것은 물론, 대형 유통업체를 중심으로 일자리를 줄이고 있다”며 “마트에 입점해 있는 상인, 납품 중소제조업체, 농민까지 어려움을 겪는 등 2차 피해도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윤관석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건설산업기본법 역시 ‘건설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한다’는 법안의 취지와 동떨어졌다는 비판을 받는다. 하도급대금 등 체불 건설사업자의 명단을 공표하도록 하는 기준을 현행 3000만원 이상에서 1000만원 이상으로 낮추는 조항이 문제가 되고 있다. 대한건설협회는 이 법안에 대해 “1000만원은 지나치게 소액이고 일시적 미납 등의 경미한 상황에도 사업자 이름이 공표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을 냈다.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제정안(생물법) 역시 ‘산업 발전’의 탈을 쓴 규제법이란 평가를 받는다. 법안은 화물차와 오토바이만 택배·배달 등 운송 수단으로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요즘은 승용차, 자전거, 도보 등으로도 배달하고 있다.
“규제 강제 말고 시장에 맡겨야”
전문가들은 국회가 법안을 통해 상생협력이나 산업의 발전을 이끄는 것은 오히려 규제 양산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입법을 통한 ‘사전규제’ 형식이 아니라 인센티브 부여 등 사후조치로 상생협력과 산업진흥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진흥법과 발전법이 결국 업종을 죽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의 섣부른 간섭이 오히려 산업을 고사시킨다”고 지적했다. 최 명예교수는 “이런 식으로 대기업에 부담을 주면 대기업이 아예 한국 업체와 사업을 하지 않게 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파트너 관계도 파탄날 수 있다”고 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도 “법은 만들수록 오류가 많아지므로 입법은 최소화해 꼭 필요한 규제만 해야 한다”며 “산업 진흥법, 발전법, 기본법 등은 1970년대 개발시대의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산업화시대의 발상을 지금 시대에 적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강조했다.
김소현/임도원 기자
한국경제 202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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