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상 전에 해야 할 일 - 양준모
공급 확대 대비 노동시장 정상화
금융권 부실채권 정리 서둘러야
나랏빚 줄이면서 국채 발행 조절
부동산 등 가격 거품 관리 필요
위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적된 정책 실패가 위기의 근본 원인이다. 지난 2017년 3분기 이후 경제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은 고용 상황을 악화하고 우리나라 잠재성장률 자체를 하락시켰다. 무분별한 재정 지출은 국가 채무만 늘리고 경제는 살리지 못했다. 코로나19 이후 금융정책도 문제다. 불합리한 규제들로 생산 활동을 늘리는 경로가 모두 막혔다. 주택 공급은 외면하고 규제만 늘리다가 집값이 급등했다. 자산 시장의 폭등은 정책 실패와 투기로 만들어진 거품이다. 위기 징후가 누적되고 있는데도 과거와 같이 정책 당국은 아무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직전 수많은 위기설에도 한국 경제는 튼튼하다는 정부의 주장이 아직도 귀에 맴돈다.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전에도 전조가 있었다. 심지어 2007년 2월에는 앨런 그린스펀이 불황을 예고했다. 눈앞에 금융위기가 다가오는데도 노무현 정부는 아무 대비를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재정 지출을 늘리고 돈도 풀었다. 대출 만기도 연장하고 기업 어음과 회사채 시장에도 개입했다. 지난해 이후 올해 말까지 국가 채무가 232.8조 원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월부터 올 4월까지 증가한 유동성 규모는 약 711조 원에 달한다. 동 기간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거의 늘지 않았으니 이렇게 유동성이 증가한 것은 부채가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이제는 자산 가격만이 아니라 물가까지 상승하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월에 1.5%, 4월에 2.3%, 5월에 2.6% 증가했고 수입물가지수도 각각 9.0%, 15.3%, 13.8% 급증했다. 향후 비용 인상형 인플레이션 성격까지 겹치면서 경기는 침체하고 물가는 계속 상승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심하지 못한 금리 인상 정책은 경제 위기를 촉발하기 마련이다. 금리 인상 전에 정부가 할 일은 과연 무엇인가.
첫째, 규제로 왜곡된 노동시장을 정상화해야 한다. 근로자가 아닌 외부인이 사업장 내에서 파업을 주도해서는 경제가 살아날 수 없다. 그동안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제 적용 확대 등으로 생산잠재력은 줄었다. 지금은 경기회복에 대비해 공급 능력을 확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때 공급을 제약하면 물가는 상승하고 경제는 침체한다.
둘째, 코로나19로 제공된 비정상적 대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은행권을 중심으로 부실채권이나 다름없는 대출에 대해서 충당금만 더 쌓았을 뿐 정부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연초부터 과잉 유동성 문제가 대두됐으나 유동성 공급은 오히려 더 늘었다. 선제적 조치의 시점은 이미 지났다. 금융권은 부실화한 채권을 정리하면서 유동성을 줄여야 한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금융 정상화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국가 채무를 줄이면서 국채 시장을 관리해야 한다. 정부가 지금 국채를 더 발행하면 향후 국채 가격 폭락과 금융시장의 자금 경색을 유발했다는 비난을 면하지 못한다. 은행과 보험이 국고채의 72%를 갖고 있다. 국고채 발행 증가로 국채 가격이 하락하면 금융기관들이 충격을 받게 된다. 기준금리 인상 전 채권 시장의 충격 흡수 능력이 떨어지면 금리 인상의 부작용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넷째, 자산 시장의 거품을 관리하는 효과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금리 인상 후에도 가속도가 붙은 가격 거품은 빠지지 않는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건설 경기가 회복되도록 유도하고 주가 상승으로 기업은 자본력을 확충하도록 독려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불합리한 정책이 누적되고 거품이 형성되는 상황에서는 금리 인상만으로 유동성과 물가를 관리할 수 없다. 정책 실패로 거품 붕괴와 인플레이션, 그리고 경기 침체가 한꺼번에 몰려올 수 있다. 금리 인상 후 경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 현실적으로 기준금리 인상 시기는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금리 인상 전에 위기 방지를 위한 정책 공조가 필요하다.
양준모 (연세대학교 정경대학 교수 / 컨슈머워치 공동대표)
서울경제 2021-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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