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 연좌제’에 이른 불공정 공시가 - 양준모
지난 4월 재·보궐선거에서 나타난 성난 민심이 가라앉긴커녕 더 불타오르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불합리한 부동산 정책으로 ‘벼락거지’와 ‘집거지’를 양산하더니, 이제는 제멋대로 공시가격을 산정해 서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각종 제도가 소득만이 아니라 재산까지 고려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부동산 공시가격의 변화는 서민들의 일상에까지 영향을 준다. 부동산 공시가격이 바뀌어서 재산 평가액이 달라지면 재산세만 바뀌는 게 아니다. 복지정책의 수혜자도 달라지고 건강보험료도 달라진다. 공시가격은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평가돼야 한다. 현재 부동산 공시가격 제도는 이런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
부동산 공시가격 제도의 문제는 오랫동안 제기돼 왔고, 지난해에는 관련 법과 시행령도 개정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공시가격 산정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하고 관련 자료를 ‘부동산 공시가격 시스템’에 공개하도록 했다. 비용 추정액, 형평성과 특수성, 그리고 가격 변동의 예측 가능성 등 평가와 관련된 사항들을 법률에 명시함으로써 투명하고 공정한 공시가격 산정을 기대했다.
그러나 올해도 공시가격은 실망만 줬다. 보도에 따르면, 공동주택 공시가격 이의제기가 2018년 1290건에서 2019년 2만8735건, 2020년 3만7410건, 2021년 4만9601건으로 급증했다. 전체 이의제기 건수 대비 조정된 건수의 비율인 조정률은 5.0%로 지난해 2.4%보다 2배로 증가했다. 최근 열린 ‘부동산 가격공시 정책토론회’에서 정수연 한국감정평가학회장(제주대 교수)은, 1개 가구의 거래만 이뤄져도 단지 내 모든 가구의 공시가격이 올라 높은 세금을 내도록 하는 현 제도는 ‘조세 연좌제’라고 지적했다. 제도도 불합리하고 실제 평가에서도 형평성을 상실했다.
부동산의 가치는 위치와 내부 공사 여부에 따라 개별적으로 결정된다. 공정한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은 실거래가밖에 없다. 시세를 반영한다지만, 공시가격 제도는 세금을 거두기 위한 절차에 불과하다. 또, 부동산 세제도 불합리하다. 재산세 납부액은 소득공제 대상도 아니다. 재산세를 거두고 종합부동산세로 더 거둔다. 문 정부는 부동산 과세 정책을 투기꾼을 제압하거나 부자들을 혼내 주는 수단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이런 인식으로 공시가격을 인상함으로써 실질적 증세를 하고 있다. 불합리한 세제와 형평성을 상실한 부동산 공시가격 제도가 맞물려 조세 저항이 발생한다.
각종 행정 목적에 사용되는 부동산의 평가액은 구입 가격을 기준으로 매년 소비자물가만 반영해서 평가하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 같은 집에서 거주하는데 이웃집이 높은 가격에 팔렸다고 내 집까지 높은 세금을 매기는 건 그야말로 조세 연좌제다. 무리한 시세 반영은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침해한다. 매매 때 부동산 가격이 올라 양도차익이 발생하면 양도소득세로 그 차익을 회수하면 조세의 형평성도 달성할 수 있다.
부동산 가격 산정 때 지역 실태를 반영하기 위해, 해당 지자체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제3의 전문기관이 이의제기를 검토하는 게 공정한 절차다. 법을 바꾸고 기관의 이름을 바꿔도 근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이제는 서민들의 민생을 위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때다.
양준모 (연세대학교 정경대학 교수 / 컨슈머워치 공동대표)
문화일보 2021-05-28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10528010735110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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