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살려면… 시샘을 정의로 포장한 ‘후진국형 포퓰리즘’ 벗어나야 - 이병태
‘줌 경제’로 토지, 자동화로 노동, ‘제로 금리’로 자본 중요성 낮아져
팬데믹 이후 ‘디지털 경제’ 주도하는 혁신 기업가 역할 커지는 추세
文정부, 편견 근거해 재벌·대기업 손발 묶어… 경제 변화 흐름 역행
‘창조적 파괴’를 ‘혁신’이라고 명명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토지·노동·자본 등 생산요소를 기업가가 창의적 아이디어로 재결합하는 것이 경제 발전의 원천적 엔진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팬데믹 이후 가장 큰 변화는 많은 경제활동이 가상공간을 통해 이뤄지는 ‘줌(Zoom) 경제’로의 근본적 변화가 급속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우선 경제 활동에서 부동산의 중요성이 크게 낮아지고 있다. 또 이미 2010년 이후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의 발전 및 가격인하로 자동화 로봇이 급속히 보급됐는데, 팬데믹 이후 사업 지속성과 소비자 및 종업원 안전을 위해 비접촉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며 자동화 투자가 더 크게 늘었다. 생산 자동화는 경제 활동에서 비전문 노동의 중요성의 감소를 의미한다.
혁신 기업가 중요성 갈수록 커지는데…
또 팬데믹은 역사상 유래 없는 통화량 증발과 제로 금리 시대를 이끌었다.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자본이 무제한 공급되며 자본의 제약과 중요성 또한 낮아지고 있다. 디지털 경제를 주도하는 대표적인 기업들에게 팬데믹은 축복이 됐고, 수익은 급등했다. 아마존의 경우 수익이 무려 220% 늘었고, 쿠팡 또한 이 열풍을 타고 뉴욕 증시에 상장했다. 이들 기업의 특징이 바로 토지, 노동 등 투입되는 생산 요소 비중이 매우 낮은 기업들이다. 한편 S&P 500 기업의 부동산, 생산시설, 상품 재고 등 유형자산의 기업가치 비중은 1975년 83%에서 2020년 10%로 축소된 반면 특허, 브랜드 가치, 고객의 데이터 등 무형자산의 비중은 90%로 늘어났다. 2020년 한 해 동안 테슬라 창업자 머스크의 자산이 약 150조원 늘어나는 등 혁신기업 창업자들의 부(富)가 몇십조씩 늘어나는 전대미문의 역사가 쓰여졌다. 이는 다른 투입요소 보다 기업가의 중요성이 더 커지는 경제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경제구조 변화 거스르는 文 정부
이러한 급격한 경제구조 변화의 와중에 문재인 정부 4년의 한국 경제 정책은 어떻게 진행됐는가? 이 정부는 시장 원리를 부정한 무모한 부동산 정책으로 토지와 부동산 거래를 사실상 국가 허가제로 만들었다. 소득 주도 성장으로 대변되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52시간 노동시간 규제, 처벌 위주의 산업 안전 규제는 노동 시장을 더욱 경직화해 일자리를 급속도로 파괴했다. 부동산 정책에 실패한 중앙정부는 가계 대출을 직접 결정하며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도 막고 있다. 모두 경제 투입 요소의 자유로운 결합을 어렵게 한 조치들뿐이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핵심적 혁신 요소인 기업가에 대한 규제 강화다. 우리는 고(故)이건희 회장의 유족들이 천문학적 상속세를 내며 미술품 기증으로 사회 공헌을 하는 와중에, 경영권 승계자인 이재용 부회장은 옥살이를 하는 괴이한 풍경을 목도하고 있다. 성공한 기업가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수많은 사회적 논란과 비용을 초래하는 사법 위협이 상존하는 이유는, 대주주의 기업 지배를 불온시하고 특히 가문의 기업 지배를 비정상으로 보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이 있다.
기업 적대적 인식이 낳은 정책들
위선적 임대료 인상으로 물러난 김상조 전 공정위원장은 ‘재벌의 후계자들이 사익 추구만 하고 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조성욱 현 공정위원장은 한국의 재벌이 가난한 집안에서 동생들 희생 속에 혼자 공부한 격이라는 ‘재벌 맏아들론’으로 재벌의 무한 사회 책임론을 주장했다. 문 대통령은 과거 야당 시절 ‘재벌이 기업범죄의 몸통’이라는 주장을, 장하성 전 정책실장은 재벌의 탐욕이 재난적 양극화의 주범이라는 ‘기울어진 운동장론’을 폈다. 이 정부의 기업에 대한 적대적 인식이 역대 정권 중 가장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발언들이다.
문제는 이런 주장이 대부분 근거도 없고, 현장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선동과 망상, 그리고 편견에 입각한 것이라는 점이다. 장하성 전 정책실장은 재벌의 탐욕을 질타하면서 1990년에서 2016년 사이 기업 총소득은 358% 늘어난 반면, 가계 총소득은 186%, 특히 가계 평균소득은 90%만 늘어나 그 폭이 기업 총소득 증가율의 4분의 1에 그쳤다며, 한국 경제는 재벌의 탐욕 때문에 경제의 과실이 가계로 흘러가지 않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들은 전 세계 시장에서 전 세계 노동력과 자본을 활용해 이익을 창출한다. 글로벌 성공이 커질수록 자국의 가계소득 비중은 축소된다. 삼성전자나 현대차의 이익은 많은 수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참여해 발생하는 것이다. 최근 13조가 넘는 삼성전자 주식배당의 55%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몫이었다. 특히 가계평균 소득의 정체는 가구의 급격한 분화로 가구수의 증가에 기인한 바 크다. 이러한 현상은 글로벌 기업의 성공과 가구 분화가 가져오는 통계적 착시이며 모든 선진국에서 나타난다. 이미 국제 학술지의 연구에서 잘 밝혀져 왔던 사실이기도 하다. 통계가 거짓 선동의 위험한 도구가 되는 표본적 사례다.
재벌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대주주들이 사익 편취에 몰두했다면 한국의 성공기업은 재벌이 지배하지 않는 기업 중에 나왔어야 했고,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은 한국 재벌기업에 대한 투자를 회피했어야 한다. 하지만 기관투자자와 외국인 지분이 높은 한국 기업 중에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재벌의 기업지배구조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라는 비판 역시 오래됐다. 하지만 최근 스위스 프리버그 대학의 연구에 의하면 전세계 주요 28개국과 비교할 때 한국 기업의 주가 디스카운트는 비재벌 기업에서 재벌기업에 비해1.85배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재벌 구조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실증적 사실에 기반하지 않았음을 입증한 것이다.
대주주들이 소액투자자들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주장의 배경에는 이익이 나도 배당을 하지 않던 과거 한국 기업들의 경향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자본시장 개방 이후 배당 성향 또한 바뀌어, 2019년의 배당 성향은 이미 글로벌 평균을 상회하고 있다. 대기업의 중소기업의 기술 탈취가 만연하다는 정치권과 일부 학자들의 주장 또한 실증적 증거가 없는 망상에 가깝다. 중기부가 발표한 2017년 중소기업 기술보호 수준 실태 보고서는 대기업으로의 기술 유출 사례로 단 1건만을 보고하고 있다.
공정위가 대기업 식당까지 개입
한편 공정위는 쿠팡 대주주인 외국 국적 창업가의 총수(동일인) 지정을 고민하면서, 직원 식당 사업을 중소기업에 개방하라고 압력을 행사하며 세계적인 식재료 서비스업의 출현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기업 성장은 혁신의 결과이지 경쟁자의 양보나 정부의 시장 할당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테슬라가 기존 자동차 회사의 자비를 통해, 쿠팡이 기존 유통회사의 양보에 의해 성장했는가? 한국경제연구원의 실증 연구는 대규모 기업집단의 계열사간 거래가 기업의 성과에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늘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한다. 보리스 거쉬먼(Gershman)은 비교의 본능이 선진국에서는 높은 성취를 추동하는 긍정의 부러움으로, 후진국에서는 파괴적 시샘으로, 경제발전에 정반대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준 바 있다. 격차를 강조하며 시샘을 정의로 포장하는 포퓰리즘의 정치가 사회적 갈등을 격화시키면, 성공한 사람들은 경제 참여와 투자를 회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팬데믹은 디지털 경제에서 기업가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급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기업가의 손발을 묶으면서 시샘이 지배하는 경제 문화 후진국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한국경제의 재도약과 지속성장은 재벌 저격수들이 선동과 망상, 편견이 만들어내는 기업가들에 대한 시샘, 사회적 정신병인 ‘재벌 편집증’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병태 (KAIST 교수 / 컨슈머워치 공동대표)
조선일보 20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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