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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포스트 팬데믹 경제’로 변신 중…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 - 이병태

• 글쓴이: 컨슈머워치  
• 작성일: 2021.03.22  
• 조회: 823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을 선언한 지 1년이 지났다. 1억2000만명이 넘는 감염자와 270만명의 사망자,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내고 있다.


큰 위기를 대응하는 과정에서는 혁신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는 유엔을 창설했다. 공동 번영을 추구하는 자유무역, 미 달러 중심 통화 체제, 저개발국 경제 개발을 지원하는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을 낳은 ‘브레턴우즈 체제’도 고안해 냈다. 대한민국이 번영한 것은 이 체제에 올라탄 덕이고, 북한이 저 꼴인 이유는 그렇지 못한 탓이다.


지금 진행 중인 ‘바이러스와의 전쟁’ 또한 ‘포스트 팬데믹’ 세상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우리는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변혁을 이해하고 잘 준비하고 있는가?


팬데믹, 디지털 전환 앞당긴 ‘타임머신’


팬데믹은 경제의 디지털화를 급속하게 앞당기고 있다. 주요국에서 팬데믹 이전에 비해 전자상거래 매출이 2~4.7배로 급증했다. 디지털 경제를 10년 이상 앞당긴 ‘타임머신’이 된 것이다. 디지털 경제 주도 기업들 주가는 천정부지로 뛰었고, 창업·경영자들 자산이 2020년 한 해 수십조원까지 늘었다.


한국 쿠팡은 창업 10년 만에 뉴욕증시 시총 100조의 기업으로, 삼성전자 바로 뒤에서 SK하이닉스와 시총 2위 자리를 다투는 기업으로 다시 태어났다. 네이버, 카카오, 셀트리온, NC소프트 등 닷컴 시대 이후에 탄생한 신생 디지털, 바이오 기업은 이미 내로라하는 재벌 기업들보다 시총뿐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이 훨씬 크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알리바바 등 디지털 플랫폼 기업은 기술과 글로벌 경제에 대한 이해력이 있는 창업자들이 차등의결권으로 급속하게 시장을 지배해 가고 있다. 쿠팡은 경제 민주화의 신화에 빠져 창업자의 경영권을 허용하지 않는 한국의 기업 지배구조 규제를 피해, 미국 증시에 지주회사 ‘쿠팡LLC’를 상장한 것이다. 중국 알리바바의 미국 증시 상장 충격 이후 홍콩, 싱가포르, 중국 등 주요 아시아 금융 허브 국가들이 모두 차등의결권을 허용한 반면, 한국은 역으로 ‘공정경제 3법’이라는 갈라파고스 규제로 치닫고 있다. 또 외국의 손짓을 마다하고 한국 증시에 상장한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법으로 끝없이 괴롭히고 있는 중이다.


디지털 원격진료는 이미 ‘뉴 노멀`


팬데믹은 원격진료를 ‘뉴 노멀(New Normal)’로 만들었다. 미국에서는 2019년 대비 2020년 원격진료가 지역 통계에 따라 7.8~175배 늘었다. 미국의 공적 의료 보험은 원격진료 대상을 80가지 확대하는 규제 개혁을 단행했다. 현재 미국 의료기관 약 52만4000곳이 원격진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반면 의료의 디지털 혁명을 외면한 한국에선, 의료계와 정부가 국민 후생과는 별 관련 없는 사안으로 사사건건 대립하며 허송세월하고 있다.


디지털 경제의 또 다른 모습은 재택근무와 재택 학습의 확산이다. 전문직은 대도시를 탈출해 인구가 적은 주변 외곽 도시로 이동한다. 그 결과 대도시 공실은 늘어나는 반면 중소 도시는 공실이 줄어든다. 개인뿐 아니라 기업도 같이 움직이는 것이다. 대도시의 높은 부동산 가격은 주택 문제를 넘어 경제성장을 제약하는 요인이다. 시카고대와 버클리대 연구에 따르면, 부동산 가격으로 인한 인력 이동 제약에 따른 GDP 손실이 무려 13.5%에 이른다. 이제 재택근무는 주택 문제, 교통·환경 문제, 인력의 비효율적 배치를 타파하는 돌파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자유로운 이동은 주택의 구매와 계약의 자유 속에서만 가능하다. 한국에선 부동산 계약과 거래의 자유는 사라지고, LH 직원들의 내부 정보에 의한 국민적 분노로 정권이 흔들거린다. 바이오 기술 혁신으로 토지를 덜 쓰면서 과잉 식량을 생산하는 시대에, 중세 농업국가의 가치관에 얽매여 허우적대는 꼴이다. LH 사태의 근본 원인은 인구가 줄어드는데도 80년대식 신도시 빅뱅 개발을 하려 한 정부에 있다.


재택근무·자동화 거스르는 규제만


근로자들이 받는 경제적 피해 역시 재택근무의 가능성 여부에 따라 양극화하고 있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에 따르면, 시간당 임금을 기준으로 한 근로자 4분위 중 최하위 분위는 2019년 대비 일자리 개수가 2020년 800만개 줄었다. 반면 최상위 4분위 일자리는 되레 100만개 늘었다. 원격 근로는 노동인구의 급속한 감소와 고령화에 대한 대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디지털 근로는 노약자나, 육아와 출산을 하는 여성의 경력 단절을 완화하고, 고령층의 근로 참여도 확대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정부는 1·2차 산업혁명의 현장에나 적용되던 노동시간 관리 제도에 기반한 노동 규제를 강화했다.


팬데믹 이후 경제의 또 하나의 변화는 비접촉 경제의 확산이다. 자동화 수요가 강력해진다는 뜻이다. 재택근무와 자동화 추세는 우리나라에서 결국 자영업자와 영세 산업 근로자들의 피해로 집중된다. 자영업자 고용 비중이 매우 높고, 선진국의 전문 지식 자영업이 아니라 노동 집약 서비스업 중심이기 때문이다. 또 내수 소비가 적어 골목 시장 자체가 공급과잉인 상태다. 자영업 비중 자체를 줄이는 구조조정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바로 지금이 자영업 분야에서 축소된 고용을 대기업에서 흡수하도록 노동 개혁을 할 적기다. 하지만 정부는 푼돈으로 화를 달래는 대증요법에만 집착한다.


경제 위기는 고통스럽지만, 누적된 문제를 정리하고 가는 변화의 시기이기도 하다. IMF의 외압에 의한 것이었으나,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우리 사회가 버텨냈기에 외환 위기를 극복한 오늘이 가능했다. 반면 일본은 버블 붕괴 당시 과도한 지원으로 ‘좀비 기업’을 키웠던 것이 디플레이션 경제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금 정부는 이 팬데믹 충격을 경제 구조 개혁의 기회로 인식하고 있는가, 아니면 ‘좀비 경제’를 키우고 있는가.



이병태 (KAIST 교수 / 컨슈머워치 공동대표)



조선일보 2021-03-22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1/03/22/XX5YZLJBHZE2DDBHHM336R3XYA/?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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