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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유치원 국공립화 논란과 소비자 선택권 - 김정호

• 글쓴이: 컨슈머워치  
• 작성일: 2019.03.18  
• 조회: 1,182

사립유치원 덕분에 소비자 선택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교육기관 중 학부모의 선택권이 가장 잘 작동하는 곳이 유치원이다. 특히 사립유치원이 그렇다. 학부모는 어떤 유치원이든 자리만 있다면 원하는 곳에 보낼 수 있다.


학부모의 선택이 유치원의 경쟁으로 이어지려면 유치원이 선택을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는 선택을 받지 못하면 손실이 입게 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사립유치원과 국공립유치원은 처지가 다르다. 사립유치원은 선택을 못 받을 경우 수입이 줄어드는 반면 국공립유치원은 부모의 선택과 거의 무관하게 정부로부터 예산이 주어진다.


따라서 사립유치원은 실질적으로 교육의 질과 가격 면에서의 경쟁이 작동한다. 국공립유치원은 수입이 학부모와 무관하게 주어지는데다가 가격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에 선택을 받기 위해 노력할 이유가 없다. 유치원 교육에서 학부모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립유치원의 존재다. 사립유치원이 모두 국공립유치원으로 대체된다면 학부모의 선택권도 무의미해진다.


사립유치원과 국공립유치원은 비용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사립유치원의 경우 원아 1인당 월평균 53만원의 유치원비를 받는데 그것을 비용이라고 볼 수 있다(2016년 기준). 국공립유치원의 경우 학부모에게 가격으로 1만-2만원을 받지만 실제 비용은 다르다. 월평균 경상비 99만원, 시설투자의 자본비용 15만원을 합쳐 114만원을 비용으로 쓴다. 사립유치원의 비용이 국공립에 비해 현저히 낮은 데는 규제도 작용하지만 비싸게 받으면 원생이 줄어드는 선택 압력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비용에 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부모의 만족도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2012년 8월 육아정책연구소가 공립과 사립 유치원 부모 각각 500명을 대상으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가 그렇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은 매우 불만족, 4는 매우 만족인 척도에서 공립유치원은 3.03, 사립유치원은 3.02의 만족도를 보였다.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 즉 비용은 사립이 국공립의 1/2에 불과하지만 같은 수준의 만족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같은 사립의 효율성은 선택 압력에 기인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정부 누리교육과정은 하루종일 아이들을 비좁은 공간에 가둬두고, 수험생처럼 주입식으로 가르치도록 한다. 교사는 13권에 이르는 교사용 지도서와 시디(CD)에 따라 아이들을 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 또 교육 및 보육계획안을 연간, 월간, 주간 단위로 작성하고, 하루 A4 용지 5장 분량의 1일 교육계획안을 작성해야 한다. 그래야 300여개에 달하는 평가지표를 통과해 국가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다. 아이들은 놀이와 활동을 통해 흥미를 유발하고 충족시키며 각자 나름의 잠재력을 키울 수 없다. 이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규격화된 상품처럼 만들어진다.


누리과정의 획일성에도 불구하고 사립유치원은 어느 정도 개성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번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로 고사 위기를 맞았다.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째 사립유치원 원장에 대한 학부모의 불신이 극심해져 실질적으로 교육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원장을 도둑으로 보는 상황에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 둘째, 자기가 세운 사립유치원으로부터 투자에 대한 수익을 취하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원


장 겸직으로 급여를 가져갈 수 있는 사람은 좀 낫지만 그나마도 어려운 사람은 실질적으로 재산을 헌납한 셈이 되어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립유치원 경영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많은 사립유치원 설립자-원장들이 폐원(신규모집 포기)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사립유치원 비리는 준비되지 않은 제도가 만들었다


사립유치원의 비리 사태가 이번 위기의 진원지다. 원장이 원비로 명품백을 사고, 해외여행을 가고, 친인척을 직원으로 채용하는 등의 비리의 내용들이다. 언론 보도만으로는 사립유치원의 소유자가 유치원의 재산을 도둑질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내막을 잘 따져 보면 이상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립유치원은 설립자의 사유재산이다.


2012년까지만해도 국가가 그렇게 인정해 왔다. 사립유치원이 사유재산이라는 말은 사립유치원의 모든 부동산과 돈이 설립자의 소유라는 말이다. 소유자는 자신들을 정당하게 사용할 권리가 있다. 자기 돈을 자기가 쓰는 것이 뭐가 이상한가. 그런 원리는 모든 자영업자에게 적용된다. 동네 식당 주인이 손님에게서 받은 음식값을 모아 식당 주인이 쓸 개인 자동차를 구입한다고 해서 횡령이 되는가? 그냥 자기 돈을 자기가 쓰는 것일 뿐이다. 동네 의원을 하고 있는 의사가 환자에게서 받은 진료비 또는 보험공단에서 받은 진료비로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 횡령인가. 전혀 아니다.


물론 세금 계산을 위해 사업상의 비용인가 개인적인 비용인가를 구분하는 문제가 있기는 하나 개인적인 용도로 쓴다고 해서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자기 돈을 자기가 쓰는 것일 뿐이다. 대다수의 사립유치원도(법인유치원을 제외) 대부분 자영업자와 같은 상황이었다. 학부모로부터 받은 돈을 어떻게 쓰든 그것은 재량 사항이었다. 학부모들에게 중요한 것은 ‘가성비’일뿐 유치원 소유자가 개인적으로 돈을 어떻게 쓰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가 생긴 것은 국가가 갑자기 학교법인용의 회계를 사립유치원에게 적용하면서부터다. 새로운 회계 방식으로 인해 유치원 설립자들은 두 가지의 제약을 받게 되었다.


첫째, 유치원 설립자들은 학부모나 국가로부터 받은 수입 중에서 설립자라는 명목으로는 한 푼도 가져갈 수 없게 되었다. 원장이라는 직책에 대한 보수의 형태로만 대가를 가져갈 수 있을 뿐이다. 설립자/투자자의 지위는 완전히 박탈당한 셈이다. 원장의 보수에 특별한 제한이 없기 때문에 설립자가 원장을 겸직해 어느 정도의 대가를 취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것은 편법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규제가 들어갈 수 있다. 또 원장을 겸직할 수 없는 설립자들은 재산을 완전히 박탈당한 셈이다.


둘째는 정부가 정한 항목 이외로는 지출이 허용되지 않는다. 비용 항목은 매우 세세한 수준까지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 교육의 내용까지 규제될 수밖에 없다. 획일적 교육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런 규제들이 갑자기 적용되기 시작했다. 사립유치원 설립자들에게는 적응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아직도 새로운 회계의 내용을 잘 모르는 원장들도 많다고 한다. 알았든 몰랐든 예전에 수십년간 해왔던 대로 행동한다면 감사에 적발되어 범죄자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이런 법은 잘못되었다. 필자는 올바른 법이라면 사회의 관습과 통상적인 행동방식을 수용해야 한다고 본다. 통념에 따라 행동한 것이 범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만약 새로운 법으로 통념을 바로잡고 싶다면 빠른 시간 안에 큰 무리 없이 새법에 맞춰서 행동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상식에 따라 행동하면 범죄가 되고, 법을 따르면 파산을 하게 되는 법이라면 범법자의 잘못이 아니라 법이 잘못된 것이다. 필자는 2012년 이후 갑자기 사립유치원에 적용되기 시작한 재무회계규칙이 그렇게 잘못된 법이라고 생각한다. 유치원 교비계좌의 돈을 사적으로 쓴 것이 횡령이 아니고 무죄임은 대법원이 여러 번의 판결로 거듭 확인했다. 그런데도 박용진, 유은혜 같은 사람들은 사립유치원 원장들을 인민재판대에 세워 처벌하고 있다. 이는 헌법 제12조가 규정하고 있는 죄형법정주의의 파괴다.


유아교육 선진국들은 무상보육을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다. 스웨덴부터 살펴보자. 이 나라의 유아교육은 2008년 유엔의 유아교육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스웨덴은 국공립유치원 위주로 출발했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교육의 획일성을 줄이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기 시작했다. 사립유치원의 설립을 허용했다. 더 중요한 것은 국공립유치원도 사립유치원처럼 취급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국공립유치원에 직접 지급하던 교육 예산을 학부모에게 바우처로 지급한 후 각자 원하는 유치원을 선택하게 했다. 학부모는 국공립유치원이든 사립유치원이든 원하는 곳은 어디든 선택하면 된다. 따라서 국공립유치원도 학부모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예산을 확보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대신 국공립유치원에도 사립처럼 상당한 수준의 자율권이 주어졌다. 교육 내용에 대해서 정부는 느슨한 지침만 제시할 뿐 구체적 교육 내용은 각 유치원이 알아서 결정한다. 궁극적 판단은 학부모가 하기 때문이다.


국공립유치원 확대, 교육의 질 저하


스웨덴은 이런 방식을 통해 무상교육을 하면서도 교육에 대한 공무원들의 통제를 최소화하고 교육의 다양성을 키워왔다. 덴마크의 경우 부모는 소득에 따라 유아교육비의 25%까지만 본인이 부담하고 나머지는 정부가 부담한다. 그런데도 정부가 교육 내용을 통제하지 않는다.


다만 유치원의 장은 (1)아동의 전인적 발달 (2)사회성 발달 (3)언어능력 (4)신체 운동능력 (5)자연학습 (6)문화의 습득 등 6개 분야에 걸친 교육과정을 작성해 지방정부의 승인을 거친 후 인터넷에 공개해야 한다. 즉 무엇을 가르칠지는 각 유치원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네덜란드, 핀란드 같은 나라도 교육 및 보육비용의 전부 또는 상당 부분을 국가부담으로 하지만 교육 내용에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스웨덴 및 덴마크와 다르지 않다.


교육부는 유치원 공공성 강화 방안을 내놓았다.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사립유치원 설립자들이 교비계좌의 돈을 사적으로 쓰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들이다. 사립유치원에 대한 상시 감시 체제, 에듀파인 의무화를 통한 회계 투명성 강화 등이다. 둘째는 유아의 학습권 보장 방안으로 사립유치원들이 폐원이나 원아 모집 중지 등을 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들이다. 셋째는 국공립유치원 확대 방안이다.


감시체제 강화 및 투명성 강화 조치들로 인해 설립자 원장들이 교비계좌의 돈을 사적으로 가져가는 일은 거의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유치원 운영 의지의 상실이라는 더 큰 문제를 불러올 것이다. 대부분의 사립유치원 설립자들에게 유치원은 교육의 통로이면서 생업의 장이기도 했다. 즉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키면서 그 돈으로 자신의 생활도 해결해온 것이다. 그런데 2012년 이후 생업적 측면이 부인되기 시작했고 이번 조치는 그 여지를 완전히 차단한다. 이로 인해 사립유치원 원장 중 폐원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폐원조차 못하게 한다면 수동적 운영 수준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결과 교육의 질은 낮아질 것이다. 유아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폐원이나 모집 중지 조치를 규제하겠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로 인해 당장 대규모 폐원에 따른 혼란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립유치원의 운영 의지가 떨어져서 교육의 질이 낮아질 것이다. 국공립유치원을 40%로 확대한다는 것은 원래부터 대통령 공약 사항이어서 새로운 것은 없다. 다만 현실성은 부족해 보인다. 10.2만명의 원아들에게 국공립유치원을 공급하자면 매년 2.6조원의 재원이 추가로 필요한데 실질적으로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실현 불가능한 약속으로 국민에게 환상을 주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사립과 공립간에 경쟁을 유도하자


우리나라 유아교육 발전을 위해 필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사립유치원의 활력이 살아 있어야 한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유아교육을 발전시켜온 주체는 사립유치원들이다. 학부모의 선택을 받기 위한 사립유치원들의 노력이 한국 유아교육의 수준을 높여 왔다. 몬테소리나 발도르프, 프로젝트 수업 등의 사립유치원들이 표방해온 교육방식들은 그들의 이뤄온 성취의 작은 일부라고 생각한다. 국공립유치원들도 사립유치원들의 그러한 노력에서 상당한 자극을 받아왔다고 확신한다. 앞으로도 사립유치원들의 활력이 살아 있어야 사회의 변화에 맞는 새로운 교육방법이 끊임없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또 사립유치원이 살아 있어야 교육 비용의 절감도 이뤄질 수 있다.


둘째는 회계와 수익 문제다. 사립유치원 회계는 투명하게 하되 설립자에게 적절한 수익을 보장해야 한다. 수십억원의 재산을 투자한 설립자들에게 수익을 한 푼도 취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문을 닫으라는 것과 다름없다. 최소한 국가가 공공요금에 포함하는 적정투자보수(약 4~5%) 정도의 수익은 취할 수 있게 해줘야 사립유치원이 존속할 수 있다. 회계는 투명하게 하면서도 수익은 인정해줘야 한다.


셋째 개별 유치원의 자율성을 큰 폭으로 늘려야 한다. 누리과정이 의무화되면서 사립유치원들은 교육의 자유를 제약당하고 있다. 다양하고 개성 강하던 사립유치원들은 국공립유치원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투명하지만 최대한 자율성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누리과정은 느슨한 가이드라인 정도로 두고 현장에서의 교육은 각 유치원이 결정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큰 원칙이 벗어나지 않는다면 개별 유치원의 교과과정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넷째, 국공립유치원도 사립유치원과의 경쟁에 노출시켜야 한다. 그래야 보다 적극적으로 시대의 변화를 교육 내용에 반영하게 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우처 제도다. 국공립유치원에 지급되던 예산 중 최소한 30만원 정도는 떼어 학부모의 바우처를 증액시킨다.


그리고 국공립유치원도 부족한 재원은 바우처를 받아 충당하게 하면 사립유치원과 상당한 경쟁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국공립유치원의 교사들은 힘들어지겠지만 유아교육의 질은 상당히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유아교육의 발전은 교사들도 수요자들의 요구에 반응할 때 더 잘 이뤄질 수 있다.


김정호 (김정호의 경제 TV 대표 / 前 연세대 특임교수 / 컨슈머워치 정책위원)

 

미래한국 2019.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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