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상한제의 후생 비용 - 정회상
가격 상한제의 후생 비용
가격 상한제(price ceiling)란 균형가격보다 낮은 수준에서 가격 상한을 설정해 그 이상 가격이 올라가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을 말한다. 대부업의 이자율 제한(대부업법 제8조)이나 주택 분양가상한제(주택법 제57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정부는 국민생활과 국민경제의 안정을 위해 중요한 물품의 가격, 부동산 임대료, 용역의 대가 등에 대해 최고가격을 지정할 수 있다(물가안정에 관한 법률 제2조).
대부분의 경제학원론이나 미시경제학 교과서는 가격상한제로 인해 시장에 초과수요가 발생하고, 거래량이 줄어들어 사회후생이 감소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생산의 비효율성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가격상한제로 인한 사회후생 감소(자중손실)를 축소해 보여주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시장에 7명의 소비자 A, B, C, D, E, F, G와 7명의 생산자 H, I, J, K, L, M, N이 있다고 하자. 소비자와 생산자들은 이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상품을 각각 한 개씩만 구입하고 판매한다고 하자. 소비자 A부터 G까지의 상품에 대한 지불용의(willingness to pay)금액은 차례대로 10, 9, 8, 7, 6, 5, 4원 이라고 하자. 예컨대, 소비자 C는 상품을 구입하는 데 최대 8(원)까지 지불할 용의가 있다. 생산자 H부터 N까지의 수용용의(willingness to accept)금액은 차례대로 4, 5, 6, 7, 8, 9, 10원 이라고 하자. 예컨대, 생산자 L은 최소 8(원)은 받아야 상품을 판매한다.
이 시장의 균형가격과 균형거래량은 각각 7(원)과 4(개)이다. 즉, 가격 7에서 4명의 소비자 A, B, C, D가 상품을 구입하고, 4명의 생산자 H, I, J, K가 상품을 판매한다. 이러한 거래로부터 소비자 A는 3, B는 2, C는 1의 소비자잉여(지불용의금액-가격)를 얻고, 생산자 H는 3, I는 2, J는 1의 생산자잉여(가격-수용용의금액)를 얻는다. 따라서 사회후생 또는 총잉여(소비자잉여+생산자잉여)는 12가 된다.
이때, 정부가 상품 가격이 너무 높다고 판단하여 가격상한을 5로 설정했다고 하자. 즉, 어떤 생산자도 5 이상의 가격을 받을 수 없다. 그러면 두 명의 생산자(H와 I)만 상품을 판매하려고 하고, 6명의 소비자(A~F)가 상품을 구입하려고 해서 4의 초과수요가 발생한다. 총 잉여는 얼마가 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생산자 H와 I의 상품을 6명의 소비자 중에서 누가 구입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만약 상품에 가장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소비자 A와 B가 구입하게 되면 소비자잉여는 9, 생산자잉여는 1이 되어 총 잉여는 10이 된다. 하지만 6명의 소비자 중에서 가장 낮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소비자 E와 F가 구입하게 되면 소비자잉여는 1이 되어 총 잉여는 2가 된다.
따라서 가격상한제로 인한 자중손실은 부족해진 상품을 누가 구입하게 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많은 교과서에서 이 경우 가격상한제의 자중손실을 2(=12-10)로 보여준다. 즉, 가장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소비자들이 부족해진 상품을 구입한다고 가정하고, 생산의 비효율성만 고려하여 자중손실을 구한다. 물론 이러한 가정을 언급하면 문제는 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가격상한제의 자중손실을 축소해서 말하는 것이 된다. 위에서 봤듯이, 가격상한제로 인해 부족해진 상품을 가장 낮은 가치를 부여하는 소비자들이 구입하게 되면 총 잉여가 2가 되어 자중손실은 10(=12-2)이 되기 때문이다. 즉, 배분의 비효율성이 존재하면 8만큼의 자중손실이 추가로 발생한다.
배분의 비효율성으로 인한 가격상한제의 자중손실을 피하는 방법이 있다. 가장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소비자 A와 B는 추가적인 비용을 들여서라도 상품을 구입하려고 할 것이다. 예컨대, 판매자들에게 웃돈을 주거나 이른 아침부터 상점 앞에서 기다리거나 아니면 판매자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는 노력 등을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소비자 A와 B는 이러한 노력에 4까지 쓸 용의가 있다. 이때 노력은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웃돈을 주는 것처럼 소비자들의 추가적 비용이 생산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이고, 두 번째는 줄서기나 찾기처럼 추가적 비용이 아무에게도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만약 소비자 A와 B의 상품을 얻기 위한 노력이 첫 번째 유형에 속하면 소비자잉여는 1이지만, 생산자 H와 I가 받는 실질적 가격이 9가 되어 생산자잉여는 9가 된다. 이 경우 총 잉여는 10, 자중손실은 2가 된다. 그러나 노력이 두 번째 유형에 속하면 A와 B가 쓴 추가 비용 8은 생산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사라져서 (소비자잉여는 그대로 1이고) 생산자잉여는 1이 된다. 이 경우 총 잉여는 2, 자중손실은 10이 된다. 따라서 웃돈을 주고 (부족한) 상품을 구입하는 행위는 가격상한제의 배분적 비효율성으로 인한 자중손실을 줄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각종 공연이 많은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암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 어떤 공연에 가장 높은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표를 구매하기 위해 긴 줄을 서고 있다면, 여기에 들어간 노력비용은 어느 누구에게도 돌아가지 않고 사라져 버리는 자중손실이 된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줄 서는 데 들인 비용만큼을 더 주고 암표를 구매한다면, 이 노력비용은 사라지지 않고 암표상들의 주머니로 들어가 총 잉여를 증가시키고 자중손실을 줄인다. 따라서 암표거래는 배분적 효율성을 증진시키는 행위이다.
결론적으로 가격상한제의 후생비용을 논의할 때 생산의 비효율성뿐만 아니라 배분의 비효율성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배분적 비효율성으로 인한 후생비용은 경제적 거래를 통해 피할 수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암표매매와 같은 문제를 다루는 데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정회상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컨슈머워치 정책위원)
브릿지경제 2019-01-14
http://www.viva100.com/main/view.php?key=20190114010004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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