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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에 달한 다수의 횡포 - 양준모

• 글쓴이: 컨슈머워치  
• 작성일: 2020.10.29  
• 조회: 854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하다. 무리 지어 서로 다투기보다는 합리적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문재인 정권은 집단소송제 및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도입 법안을 마련했다.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도입한다는 주장까지 덧붙이고 있다. 문 정권이 지향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다수가 소수에 모든 자료를 요구할 수 있고, 피해를 입증할 필요도 없으며, 소수가 무죄를 입증 못하면 처벌받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 다수가 항상 승리하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인가.


현재 피해가 구체적으로 확정되고 행위와 피해의 인과관계가 명확하면 어떤 국민도 자신의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다. 집단소송이 제기되는 사건은 개개인에겐 다툼의 실익이 없는 분야일 것이다. 개인 피해가 특정되지 않고 인과관계도 명확하지 않은데 집단 소송을 제기한다고 피해가 입증될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집단소송제가 필요하지 않다.


집단소송의 원고는 다수의 힘으로 돈을 모으고 언론을 동원하여 기업보다 우월적 지위를 갖는다. 여기에 정치가 가세하면 기업들은 감당하기 어렵다. 기업은 소비자에게 물건을 파는 `을`이다. 소비자가 외면하면 기업은 존립할 수 없다. 사소한 소문도 기업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친다. 우지 라면 파동, 쓰레기 만두 사건, 중금속 머드팩 사건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사실 규명 전에 이미 기업은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받았다.


문재인 정권은 입증 책임을 완화하고, 증거개시제도와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할 뿐만 아니라 남소방지장치는 대폭 축소했다. 여기에 징벌적 손해배상제까지 동시에 도입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소송 천국으로 만들려 한다. 입증책임의 부담도 없으니 국민의 정서에 호소하려는 사행성 소송이 늘어난다. 증거개시제도로 피고의 부담은 늘어나기 때문에, 소송을 하겠다고만 해도 기업은 타협하려고 할지 모른다. 소송사업은 흥할지 모르겠지만, 기업이 무너지고 경제는 침체할 수밖에 없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우리의 법 체제와 정합성을 갖지 못한다. 상품 결함이나 과실로 피해가 발생하면 해당 직원뿐만 아니라 책임자까지 이중으로 처벌받는다. 손해배상도 추가적으로 책임진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이러한 법 체제 속에서 삼중 처벌을 부과한다. 이중 삼중의 처벌로 분노는 보상될지 몰라도 사회는 분열된다.


피해 보상이 불충분하니 피해액의 5배를 보상하자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일반적으로 피해가 입증되지 않았으니 보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피해 보상을 했는데 기업의 이익이 더 많기에 피해액의 5배를 보상해야 한다는 것도 논리적이지 못하다. 피해자에 대한 피해는 보상하고, 범죄는 형벌로 처벌해야 하는 것이 정의 실현의 기초다. 범죄로 발생한 수익은 환수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필요 없는 이유다.


집단소송으로 어떤 기업이 피해를 볼까. 오랜 기간 검증된 상품을 공급하는 기업들이나 해외의 상품을 수입하는 기업들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다. 법적 대응 능력이 있어도 부담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이번 조치는 새 물건으로 시장에 진입하려는 중소기업이나 대응 능력이 없는 영세사업자에게 치명적이다. 정상 국가에선 개발위험을 항변할 수 있는 제도를 갖는다. 개발위험에 대한 법적 위험이 증가하면 기업은 혁신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성공한 기업가들은 항상 신뢰를 얘기한다. 좋은 기업들도 한 번의 실수로 무너진다. 기업들은 물건에 하자가 발생하면 고치고 소비자 신뢰를 얻는 노력을 통해 다시 일어선다. 이런 과정으로 신생 기업은 좋은 기업으로 성장한다. 시장의 자생적 질서는 이렇게 형성된다. 문 정권은 시장의 자정(自淨) 과정을 법률투쟁으로 바꾸고, 기업이 다시 일어설 기회를 없앤다.


다른 나라의 법을 선택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무리다. 미국에 왜 수십 년이 넘은 상품들만 진열돼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혁신이 사라지면 저성장은 고착된다. 문 정권이 약자와 강자의 프레임으로 정치에 승리할지 몰라도, 대한민국은 법의 탈을 쓴 다수의 횡포로 고통받을까 두렵다.



양준모 (연세대학교 정경대학 교수 / 컨슈머워치 공동대표)


디지털타임스 2020-10-29

https://n.news.naver.com/article/029/0002633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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