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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라는 새로운 정경유착 - 김정호

• 글쓴이: 컨슈머워치  
• 작성일: 2021.07.12  
• 조회: 594

한 글로벌 기업이 필자에게 글로벌 경제에 대한 강의를 요청하면서 특별한 주문을 해 왔다. 주요국들의 ESG 경영 동향을 포함시켜 달라는 내용이었다. 임원들이 반드시 숙지해야 할 내용이라고 했다. 덕분에 필자도 ESG 투자 동향에 대해 상세히 들여다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ESG란 Environment, Social Value, Governance 의 첫 자를 조합한 용어인데 ESG Investing 을 말할 때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다. 환경보호, 사회적 가치 추구, 좋은 지배구조 측면에서 우수한 기업에 투자를 하는 것을 ESG Investing 이라고 부른다. 이런 투자가 워낙 대세를 이루다 보니 기업들의 ESG 점수를 매기는 기관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각종 경제신문, 로펌, 콘설팅 회사들 중 ESG 평가를 하지 않는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한 신문에 따르면 그 숫자가 국내외에 600여개가 된다고 한다.


지표가 공개되어 있는 기업지배구조원의 ESG 평가지표를 보면 환경에서는 이산화탄소 배출 상황, 사회적 가치에서는 정규직 대 비정규직 비율, 지배구조 관련해서는 집중투표제 채택 등이 들어 있다. 쉽게 말해서 얼마나 착한 기업인지의 정도를 평가한다는 것인데, 지표가 주관적이기 짝이 없다. 그러다 보니 평가 기관에 따라 같은 기업의 ESG 점수가 제각각 나올 때가 많다. 어쨌든 그렇게 도출된 ESG 점수를 보고 투자를 하겠다는 것이 ESG Investing 이다.



 


ESG 점수가 투자의 중요 기준이 되다 보니 평가의 대상이 되는 기업들도 ESG 경영을 하느라 부산하다. 삼성, 현대차, SK, LG처럼 여론의 눈치를 많이 살피는 기업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필자에게 강연을 부탁했던 중견급 기업들도 ESG 경영을 한다며 부산을 떨고 있다.


서구 선진국들은 더 하다. RE100이라 하여 모든 에너지를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로만 충당하겠다고 선언한 기업들의 모임에 애플, 구글 등 이름만 대면 아는 기업들이 300개가 넘게 참여해 있다. 그들의 상당수는 협력업체들에게까지 ESG 경영을 요구하고 있다. ESG 활동을 안 하면 글로벌 대기업에 납품도 할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ESG 경영이 지구 환경이나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데 기여할지는 몰라도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지는 못한다. 오히려 비용을 높이고 수익성은 낮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너도나도 ESG 경영에 나서는 이유는 투자자들이 요구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투자 시장에서 ESG Investing을 주도하는 투자자는 블랙록 Blackrock이다. 움직이는 자금은 2021년 1월 현재 8.7조 달러, 한화로는 8600조원에 달한다. 세계 증시 총액의 8%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각국의 연금기금들뿐 아니라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이 블랙락에 투자를 위임했는 데 그 돈들이 ESG에 투자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투자 시장의 ESG 열풍이 더욱 뜨거워졌다. 투자대상인 기업들로서는 투자자들의 요구 사항인 ESG 경영을 외면할 수 없다.


ESG 경영이 기업의 수익성을 낮춘다면 주가도 낮아질 것이고 그런 기업에 투자하는 ESG 투자의 수익성도 낮아야 한다. 놀랍게도 현실은 반대다. ESG 투자의 수익성이 비-ESG 투자보다 월등이 높게 나타났다.


아래 그림은 미국에서 운영중인 ESG 펀드들의 수익성 분포를 보여준다. ESG 여부를 떠나 모든 펀드들을 수익률 기준으로 4등분한 후 ESG 펀드가 각 4분위에 얼마나 속하는지를 표시했다. 놀랍게도 ESG 펀드의 42%는 1사분위, 33%는 2사분위에 속했다. 즉 75%가 평균 이상의 수익률을 거뒀다. 평균 이하의 수익률은 25%에 불과했다.


ESG 투자의 수익성이 높은 이유는 ESG 점수가 높은 기업들의 주가가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몇가지의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는 코로나로 인한 우연의 일치이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가장 주가가 많이 오른 기업은 FAANGM 이라고 불리는 Facebook, Apple, Netflix, Google, Microsoft 같은 곳들이다. 이 기업들은 주로 전기만을 쓰기 때문에 ESG 점수가 높다. ESG 점수가 낮은 석유 관련 기업들은 유가 하락으로 주가가 많이 하락했다. 코로나에 따른 수혜기업, 피해기업이 우연히도 각각 ESG 우수기업, 열등기업과 일치했다. 그러다 보니 FAANGM 기업에 투자한 기업들이 ESG 투자로 돈을 번 것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더욱 중요한 요인은 ESG 기업들에 대한 자금의 지속적 유입이다. ESG 투자의 수익률이 높다 보니그런 기업들의 주식를 매입하는 수요는 더욱 늘고 주가는 계속 오른다. 기업의 생산성은 낮아지는 데 주가는 높아지는 현상, 즉 돈이 돈을 버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시장과 정치의 유착 때문에 생긴 이 현상이 얼마나 더 지속될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영원하지 못할 것임은 분명하다.


한국 기업들은 ESG 열풍 훨씬 이전부터 정치와 깊이 얽혀 있었다. 정주영, 김우중, 김승연 등의기업가들이 모두 정경유착을 했다. 정경유착 없이는 재벌기업을 유지할 수 없었다. 하다 못해 정치의 개입을 덜 받기 위해서라도 정치에 줄을 대야 했다. 그나마 정치에 덜 가까웠던 기업이 삼성인데, 이재용으로의 승계 과정에서 그 전통이 깨져 버린 듯하다.


이번의 ESG 라는 이름의 정경유착은 두가지 점에서 과거와 다르다. 첫째, 과거의 정경유착이 특정 정치세력과의 유착이었던 반면 ESG 는 대중이라는 정치세력과의 유착이다. 기업에게 늘 요구되어 왔던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도 결국 기업이 대중에게 돈을 주고 특혜를 받으라는 요구다. 과거의 것이 은밀한 유착이어서 적발되면 범죄 취급을 받았던 반면 이번 것은 유착할수록 대중의 칭찬을 받는다 . 하지만 대중의 인정을 받기 위한 유착도 분명 정경유착이고 그 비용은 과거의 것보다 더욱 클 수 있다.


둘째, 과거의 정경유착이 재벌 대기업들에 주로 국한되었던 반면 이번의 외국발 ESG 열풍은 범위가 훨씬 넓다. 중견기업들뿐 아니라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거의 모든 기업들까지 영향권에 들었다. 여론의 감시에서 벗어난 작은 기업들만이 정치와 무관하게 경영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정치인이 타락하면 경제에 치명상을 가한다. 그래도 그건 정권이 바뀌면 밝혀질 가능성이라도 있다. 대중 전체가 타락하면 고쳐질 가능성이 전무하다. 세계가 그런 길로 들어선 것 같다.



김정호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 컨슈머워치 정책위원)



브릿지경제 2021-07-12


http://www.viva100.com/main/view.php?key=20210712010002777E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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