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덤보이스 #10 위피와 아이폰과 공인인증서
여러분 위피라는 것을 들어보셨는지요? 무선인터넷을 뜻하는 와이파이(WiFi)가 아니고 위피(WIPI: Wireless Internet Platform for Interoperability) 말입니다. 휴대전화에서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한 운영체제인데요, 2008년까지 한국에서 사용하는 모든 휴대전화는 이 운영체제를 의무적으로 장착해야 했습니다.
국내 통신사들끼리 호환성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동시에 국내 휴대전화를 보호하겠다는 목적도 있었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도 했죠. 스티브잡스가 만든 애플의 아이폰 아시죠? 아이폰은 2007년 1월에 출시되었는데요, 한국은 출시국 명단에서 빠져 있었습니다. 왜 인지 짐작하시겠죠? 위피 때문이었습니다. 애플의 아이폰은 i-OS라는 운영체제를 사용하는데요, 한국에 출시하려면 그것을 걷어내고 한국 정부가 의무화하고 있는 위피를 장착해야 했거든요. 애플의 입장에서는 한국시장만을 위해 그런 비용을 들일 이유가 없었던 거죠.
그러다 보니 아이폰을 쓰고 싶어하는 한국 소비자들의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죠. 또 한국의 통신사업이 세계로부터 고립되어간다는 느낌도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정부는 눈물을 머금고(?) 2009년에 위피 의무화 제도를 폐지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당장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삼성전자의 옴니아라는 휴대전화 기억나시죠? 그야말로 한국에서만 팔 수 있었던 제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아이폰이라는 강력한 경쟁자와 맞닥뜨리고 나서 어떻게 되었나요? 네, 옴니아는 아이폰과의 경쟁에 패해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죠? 삼성전자는 갤럭시라는 정말 뛰어난 휴대전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자랑스러운 한국의 갤럭시폰 말입니다. 우리만의 것을 버리고 세계의 것을 받아들이자 세계에 내세울 새로운 우리만의 것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죠.
안타까운 것은 이런 일을 겪었으면서도 똑같은 어리석음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인터넷 뱅킹이나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살 때 사용하는 공인인증서 이야기입니다. 이 공인인증서는 한국에만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아마도 미국의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에 들어가서 책을 사보신 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거기서는 공인인증서 같은 것을 요구하지 않죠. 또 공인인증서를 쓸 때처럼 뭘 자꾸 깔라고 해서 뭔지도 모르고 예를 누르게 되는 일도 없습니다. 결재도 원클릭방식이라고 해서 정말 간단하게 이루어지더군요. 그러면 아마존 같은 곳에는 해킹 등의 염려가 없냐고요?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각자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아서 대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를 편하게 하면서도 안전한 저마다의 방법을 찾게 되는 것이죠.
한국은 공인인증서라는 것을 강제로 써야 하다 보니 과거 위피 때와 마찬가지로 점점 더 고립되어 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외국인이 한국의 쇼핑몰에 들어와서 결재를 할 수 없습니다. 한국인은 외국 쇼핑몰에서 결재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데 말입니다. 컴퓨터 보안기술도 발전이 더디다고 하는군요.
더욱 흥미로운 것은 한국의 인터넷 사용자들이 마이크로소프트 익스플로러에 갇혀버렸다는 것이죠. 세계와 한국의 인터넷 브라우저 점유율 차이는 그런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세계 전체로 보면 구글의 크롬이 42.68%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25.44% 로 구글 사용자가 마이크로소프트 사용자의 거의 두배에 달합니다. 반면 한국은 크롬이 5.42%,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62.47% 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전부이던 예전의 모습에서 달라지지 않은 것이죠. 그만큼 한국은 크롬 기반의 소프트웨어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가고 있을 겁니다. 공인인증서의 기반인 Active-X 가 마이크로소프트 익스플로러에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구글 크롬을 주로 쓰는 저만 해도 인터넷 뱅킹 같은 것들을 위해 익스플로러를 같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불편하기 짝이 없죠.
그렇다고 해서 공인인증서 방식이 특별히 안전하냐면 그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공인인증서가 기반하고 있는 소프트웨어는 1996년에 만든 Active-X 인데요, 그 자체로도 문제가 있어 마이크로소프트 조차도 지나치게 이것을 믿지 말라고 경고를 할 정도라는군요. 정부의 규제가 한국의 인터넷금융 보안 산업을 1996년에 고착되어 시켜버린 셈이죠. 이것은 창조경제를 부르짖고 있는 나라에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제 어떤 방식으로 금융거래의 안전을 보장할지는 당사자들이 알아서 결정하게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공인인증서를 폐지할 필요도 없습니다. 강제만 하지 마세요. 예전처럼 공인인증서를 쓸 사람들은 그렇게 하도록 놔두면 됩니다. 다만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사람들을 막지만 말아주십시오. 그래야 창조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정부가 국민을 좀 믿어줬으면 좋겠습니다.
프리덤팩토리 대표이사 김 정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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