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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덤보이스 #53 배임죄, 그 참을 수 없는 모호함

• 글쓴이: 컨슈머워치  
• 작성일: 2014.09.24  
• 조회: 1,979

김상조 교수의 경제개혁연대가 정몽구 회장을 배임혐의로 고발할 수도 있다는군요. 이사회에서 입찰금액에 대한 논의도 하지 않은채 10조라는 큰 금액을 써내서 현대차에게는 손해를 끼쳤고, 상대방인 한전에는 부당한 이익을 줬으니 배임죄가 된다는 겁니다. 배임죄로 유죄판결을 받는다면 정몽구 회장은 무기징역을 살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살인자에게나 적용되는 형이죠. 특정경제가중처벌법 상 업무상 배임의 금액이 50억 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입찰한 금액이 10조 5500억 아닙니까? 무기징역을 받아도 여러번 받을 금액인 거죠. 우리 법은 비싼 돈에 땅 사는 것을 살인에 버금하는 죄로 정해 놓은 셈이죠.

부지매입에 큰 베팅을 했다고 해서 감옥을 가야 한다? 이건 뭔가 이상합니다. 사람을 감옥에 보내려면 최소한 사악한 행위를 했어야 하죠. 회사 돈을 떼어 먹었든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기를 쳤든가 하는 것 말이죠. 큰 베팅을 해서 땅을 산 것은 사악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결과적으로 승자의 저주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 땅을 이용해서 대박을 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 땅은 정몽구 회장 개인 몫이 아니라 현대자동차 회사의 것입니다.

땅을 비싸게 샀다해서 형사처벌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이 죄가 될지 안 될지의 여부는 고발과 기소와 재판의 긴 과정을 거쳐서 결정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변수가 작용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일단 고발이 되면 검사가 재판에 기소는 할 것입니다만 재판에서 무죄로 판결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야단법석을 거치겠죠. 저는 이런 경영 행위에 대해 형사 처벌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법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배임죄를 거론하는 것은 어제 한 토론회에서 배임죄를 가지고 주제 발표를 했었기 때문입니다.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업무상 배임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토론회였는데요. 업무상 배임죄의 적용 기준이 너무 모호해서 웬만한 경영행위는 배임죄가 될 소지가 있고 이런 상태에서는 경영자들이 소신 있게 경영을 하기 힘드니 배임죄의 폐지까지 포함해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 토론회를 마쳤는데 마침 또 정몽구 회장에 대한 배임죄 고발 기사가 인터넷에 떠 있어서 이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배임죄는 정말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입니다. 정몽구 회장은 비싸게 산 것이 문제되고 있지만 KT의 이석채 회장은 사옥을 헐값에 팔았다며 고발되기도 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무혐의로 처리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합니까. 그러는 과정에 벌써 방송 화면에 죄인처럼 대서특필되고 망신이란 망신은 다 당했죠. 이런 일이라면 형사책임이 아니라 회사 내에서 경영상의 책임을 따지든가, 아니면 손해배상 청구 등의 민사 소송으로 다루게 해야 할 것입니다.

배임죄는 재산을 사고파는 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더 자주 폭 넓게 적용되는 것은 계열사 지원행위입니다. 그룹 형태의 기업들에서 한 계열사가 어려움에 처하면 사정이 괜찮은 다른 계열사들이 나서서 돕곤 하죠. 그런데 그것이 바로 배임죄에 해당합니다. 도움을 준 회사가 손해를 입었으니 배임죄라는 거죠.

대기업에 부도가 나면 총수를 비롯한 경영자들이 수갑을 차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이것입니다. 웅진의 윤석금 회장, STX의 강덕수 회장, 동양의 현재현 회장, 대우의 김우중 전 회장, 기아차의 김선홍 전 회장, 쌍용의 김석원 전 회장, 정몽원 한라그룹 전 회장, 한화의 김승연 회장 등이 정상적 계열사를 통해 부실계열사를 살리려다가 배임죄로 형사처벌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한 번 가정해 보시죠. 10개의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려움에 처한 그 계열사를 잘라서 부도를 내거나 법정관리에 넘기시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계열사로 하여금 도와주게 해서 살리는 노력을 하겠습니까? 문제의 계열사를 버리겠다고 결심하면 배임죄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원을 해서 살려내겠다고 결정을 하면 배임죄에 걸리게 되죠. 그래야 하는 걸까요? 어느 쪽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회사를 살리기 위한 결정이었다면 죄로 삼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배임죄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프리덤팩토리 대표 김 정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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